사장의 서재 · 보스모드 17화 | 2막 노무
← 16화 주휴수당, 5인 미만이라 안 줘도 된다는 착각 · → 18화 최저임금·수습의 경계
지난 편에서 근로계약서를 “가장 확실한 방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계약서에 잘못된 조항이 들어 있으면, 방어막이 아니라 증거물이 됩니다. 사장님 서명이 박힌 위법 조항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계약서를 ‘썼다’와 ‘제대로 썼다’는 다른 문제입니다
근로계약서 없이 직원을 쓰면 500만 원부터 샌다는 이야기는 이미 드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장님이 인터넷에서 양식을 받아 계약서를 씁니다. 문제는 그 양식에 붙어 있는 특약들입니다.
“퇴사 시 위약금 300만 원”, “수습 3개월 급여 90%”, “가불금은 월급에서 공제”. 사장님 눈에는 전부 매장을 지키는 안전장치로 보입니다. 그런데 노동청 조사관 눈에는 이 세 줄이 전부 법 위반 자백서로 보입니다. 조항 하나하나가 어떻게 사장님을 찌르는지, 다섯 가지로 정리합니다.
독소조항 1 — “중도 퇴사 시 위약금 ○○만 원”
가장 흔하고, 가장 확실하게 위법인 조항입니다.
근로기준법 제20조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하는 계약 자체를 금지합니다. “갑자기 그만두면 300만 원 배상”이라고 써도 그 조항은 무효라서 한 푼도 못 받습니다. 받기는커녕, 그 조항을 넣은 것만으로 500만 원 이하 벌금 대상입니다.
대법원도 일관됩니다. 실제 손해가 얼마인지 따지지 않고 미리 정한 금액을 물리는 약정은 전형적인 위약 예정으로 효력이 없다고 봅니다(대법원 2006다37274). 직원이 실제로 손해를 끼쳤다면 그때 실손해를 입증해 청구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금액을 미리 박아두는 것이 문제입니다.
독소조항 2 — “수습 3개월간 급여는 90%”
이 조항은 조건을 갖추면 합법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매장이 그 조건을 못 갖춘다는 것입니다.
수습 감액(최저임금의 90%)은 세 가지를 전부 충족해야 합니다(최저임금법 제5조 제2항).
수습 감액 3대 요건
① 근로계약 기간 1년 이상
② 수습 시작 후 3개월 이내
③ 단순노무직이 아닐 것
여기서 사장님들이 놓치는 게 ③입니다. 서빙, 주방보조, 배달, 청소는 한국표준직업분류상 단순노무 종사자로 분류되어 수습이어도 감액이 불가능합니다. 6개월짜리 알바 계약에 90% 조항을 넣어도 ①에서 걸립니다. 즉, 식당·카페 알바 대부분에게 수습 90%는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 조항입니다.
2026년 기준으로 감액이 합법인 경우에도 하한선이 있습니다. 최저시급 10,320원의 90%인 시급 9,288원(월 환산 1,941,192원) 밑으로는 못 내려갑니다. 요건 없이 깎으면 최저임금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까지 갈 수 있는 사안입니다.
독소조항 3 — “시급에 주휴수당 포함”
지난 16화에서 다룬 내용과 정면으로 연결됩니다.
‘주휴 포함’이라는 문구 자체는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금액이 기준선을 못 넘으면 문구는 무효이고 차액은 임금체불이 됩니다. 2026년 주휴 포함 실질 시급의 마지노선은 12,384원입니다. 계약서에 “시급 12,000원(주휴 포함)”이라고 쓰는 순간, 서명한 그 종이가 시간당 384원씩 체불한 증거가 됩니다.
포함형으로 쓰려면 기본시급과 주휴수당을 금액으로 구분해 명시하십시오. 뭉뚱그린 한 줄이 분쟁의 씨앗입니다. 관련 글: 주휴수당, 5인 미만이라 안 줘도 된다는 착각
독소조항 4 — “가불금·대여금은 급여에서 공제”
직원 사정이 어려워 돈을 빌려주는 사장님이 많습니다. 그 마음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갚는 방식을 계약서에 박는 것입니다.
근로기준법 제21조는 앞으로 받을 임금에서 변제하기로 하고 빌려준 돈(전차금)을 임금과 상계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빌려주는 것 자체는 됩니다. 월급에서 일방적으로 까는 것이 안 됩니다. 임금은 전액을 지급하는 게 원칙이고, 공제는 법령이나 단체협약에 근거가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빌려준 돈은 별도의 차용증으로 처리하고, 상환은 직원이 월급을 받은 뒤 본인 의사로 하게 하십시오. 경로 하나 차이로 합법과 임금체불이 갈립니다.
독소조항 5 — “교육비·유니폼비, 조기 퇴사 시 전액 반환”
이 조항은 설계에 따라 유효와 무효가 갈립니다.
판례 기준으로, 사용자가 실제 지출한 교육·연수 비용을 근로자가 일정 기간 근무하면 면제해주는 구조는 요건을 갖추면 유효합니다. 핵심 요건은 세 가지입니다. 근로자가 부담했어야 할 비용을 회사가 대신 낸 것일 것, 의무 근무기간이 합리적일 것, 반환 금액이 실비 범위일 것.
반대로 “1년 안에 나가면 무조건 100만 원 반환”처럼 실비와 무관한 정액 반환은 독소조항 1과 같은 위약 예정으로 무효가 됩니다. 유니폼·기초 직무교육처럼 사업 운영에 당연히 필요한 비용을 직원에게 물리는 조항도 위험합니다. 반환 조항을 쓰려면 ‘실제 지출 증빙이 있는 비용을, 정산 방식으로’가 원칙입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
첫째, 지금 쓰는 계약서를 꺼내 위 다섯 조항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둘째, 위약금·정액 반환 조항은 오늘 삭제합니다. 무효인데 벌금 리스크만 남는 조항입니다. 셋째, 수습 감액은 계약 기간 1년 이상·비단순노무직에만 적용하고, 감액 사실과 비율을 계약서에 명시합니다. 넷째, 시급 구성(기본급·주휴수당)을 금액으로 구분해 적습니다. 다섯째, 애매한 특약은 고용노동부 표준근로계약서를 기본으로 삼고, 추가 특약만 노무사에게 검토받습니다. 특약 몇 줄 검토 비용이 벌금 500만 원보다 쌉니다.
실행 체크리스트
- 현재 계약서에 위약금·손해배상 예정 조항이 없는지 확인했다
- 수습 감액 대상이 3대 요건(1년 이상·3개월 이내·비단순노무)을 충족하는지 확인했다
- 수습 적용 시급이 9,288원(2026년 하한) 이상인지 확인했다
- 시급 구성에서 기본급과 주휴수당을 금액으로 구분해 기재했다
- 가불·대여금은 계약서가 아니라 별도 차용증으로 분리했다
- 교육비 반환 특약을 실비 정산 구조로 바꿨거나 삭제했다
- 고용노동부 표준근로계약서와 대조해 누락 항목을 점검했다
저는 그 조항으로 인건비를 아끼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노무사를 끼고 일하는 게 굳이 필요할까 싶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최저시급으로 사람을 두다 보니 채용도 잘 안 됐고, 어렵게 구해도 딱 받는 만큼만 일했습니다. 그래서 시급을 올리고 주휴수당을 포함시켜 인력을 채웠습니다. 다행히 그 표기 방식을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업이 커지면서 노무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고, 그때 알았습니다. 이렇게 뭉뚱그려 쓰면 신고당할 수 있고 과태료까지 낼 수 있다는 것을요. 그 뒤로 저는 “주휴수당 포함”이라는 한 줄을 계약서에 넣지 않습니다. 혹시 모를 리스크를 미리 막아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기본급과 수당을 나눠 정직하게 지급합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저를 믿고 일하게 됐습니다. 계약서 한 줄을 아끼려다 신뢰를 잃는 것보다, 처음부터 명확히 밝히는 쪽이 결국 사람을 남긴다는 걸 배웠습니다.
마무리
계약서는 분량이 아니라 정합성이 방어력입니다. 조항이 많다고 사장님이 안전해지는 게 아니라, 위법 조항이 없어야 안전해집니다. 오늘 계약서를 꺼내 다섯 조항만 대조해 보십시오. 10분이면 끝나고, 벌금 500만 원과 임금체불 진정을 미리 막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수습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최저임금의 경계선을 다룹니다. 다음 글 · 최저임금·수습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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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책 안내
이 글은 일반적인 노무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공인노무사·변호사의 공식 자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조항의 유·무효 판단은 계약 내용과 개별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관련 법령과 판례는 개정·변경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수치는 2026년 적용 최저임금(시급 10,320원)을 기준으로 하며, 계약서 작성·변경 전 반드시 최신 기준과 전문자격사 확인을 거치시기 바랍니다.
참고 자료 (원출처)
근로기준법 제17조·제20조·제21조 — 국가법령정보센터
최저임금법 제5조 제2항 — 국가법령정보센터
고용노동부 표준근로계약서